브라운 아이즈 시절에 대학로에서 열렸던 첫번째 개인전도 보고 올 정도로,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분이라 이번에도 놓칠 수 없는 기회였는데요.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통에 당초 예정했던 2월 12일보다 2주 늦춘 28일에서야 막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혹시나 이번 기회를 놓치신 분들을 위해, 그 따뜻했던 갤러리의 생생한 모습을
음악 얘기와 함께 살짝 풀어 보려고 합니다.
흑인을 그리며 듣고 노래하는 예술가
명동 성당 뒷편 나지막한 언덕 위에 뚫린 좁디 좁은 골목, 그 사이에 위치한 허름한
2층 건물이 삼일로창고극장입니다. 마음먹고 찾아가지 않으면 절대 못찾을 것만 같은,
미지의 공간이었죠. 하지만 2층 갤러리에 올라가자, 수많은 사람이(정확히는 여학생들)
그야말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좁디 좁은 갤러리에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갤러리에 들어섰을 때, 첫 느낌은 약간의 실망이었어요.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이 곳은 조용히 작품을 음미할 만한 공간도 아니었고
관람객은 한 10배는 많아진 것 같고, 게다가 2년 전 갤러리에서 보았던 엽서 드로잉이
다시 벽에 걸려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Keith Sweat의 그림도 그 중 하나였죠.
하지만, ADracks 엽서 위에 끄적여진 Keith Sweat의 얼굴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니,
갑자기 Keith의 음악이 어딘가에서 흐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불현듯 들더군요.
불후의 명곡 'Nobody'와 'Twisted'가 실린 그의 96년 앨범은, 이른바 New Jack R&B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스타일리쉬한 곡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 앨범을 기점으로
트렌디한 사운드(특히 힙합)과의 접목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그만의 로맨틱한
감성도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합니다. (87년 1집 ~ 96년 5집까지의 앨범을 강력 추천합니다)
추천! Keith Sweat (1996) Didn't See Me Coming (2000)
나얼의 손으로 다시 태어난 Keith의 얼굴은, 원본 사진보다 좀더 부드럽고
푸근해 보인달까요?
한편, Nonie는 Keith Sweat의 감동을 되새김질할 틈도 없이, 수많은 여자들
(간혹 그들에게 떠밀려 함께 온 남자들)의 셔터 누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습니다. "과연 엽서 속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면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일까?"
하는 약간의 의문과 함께 말이죠.
그래도 인파 속의 좁은 틈으로 열심히 기웃거려 보니, 지난번 전시 때는 눈에 띄지 않던
작품들이 보이더군요. 바로 아프리카의 기아를 묘사한 그림이었습니다. 상표가 그대로
붙어 있는 찢어진 골판지, 그 위에 버려진 듯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은 그 자체로 리얼했습니다.
얼마 전 그의 자메이카 여행 때문일까요? 그의 관심사가 더이상 흑인'음악'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까만 아이의 반짝이는 눈빛 앞에서 힘겹게 시선을
돌리자, 그가 디자인한 핸드폰줄을 팔아 불우이웃 돕기에 쓴다는 작은 판매대가 보였습니다.
흙과 빛이 만들어낸 따뜻한 메세지, 그 속에 흐르는 음악
협소한 갤러리 내부에 걸려진 몇개의 액자들, "이게 다야? 이럴 순 없어~!!" 하며
순간 당황한 Nonie. 그 때, 한쪽 벽에 쳐진 검은 커튼을 발견합니다.
큰 맘 먹고 커튼을 살며시 들추자, 그 안에 새로운 세상이 있더군요.
컴컴한 어둠속에서 번갈아 깜박이며 불을 밝히는 네모난 상자들이 바로 그것.
흙을 긁어 만든 드로잉에 투과된 은은한 불빛들, 그 빛에 실려 전해지는 음악이
순식간에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어둠의 방'의 신비한 힘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니,
구석에 설치된 쥬크박스 위에 그가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선곡표를 발견!
그 순간 Stylistics의 Betcha by golly wow, 그 아름다운 하모니가 들려 오면서,
전 이미 나얼이 숨겨놓은 보물에 한발짝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어두운 공간에서 사진 찍기에만 열중했던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 떠들면서 음악이 나오는지조차 몰랐을 사람들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보물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요?
그날 제가 찾았던 보물은 나얼이 전달하고자 했던 주제인 'Sweet Thing'(사랑,봉사와
같은 가치)도 아니었고, 작품과 R&B 음악이 어우러진 심미적인 만족도 아니었습니다.
열정, 그리고 그 열정이 낳은 보이지 않는 힘이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흑인 문화와 흑인 음악에 대해, 일부러 알리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그림에서, 그의 갤러리에서 흘러나오는 70년대 소울음악
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흑인 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죠.
2월의 어느날, Nonie 보물 찾기는 대략 성공이었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마지막으로, 그날 선곡표에 실려 있던 곡들이 담긴 앨범들을 몇 개 선별해 보았습니다.
나얼의 BGM 선곡표
추천 앨범
아티스트: By All Means
앨범명: It's Real
BGM: Love Lies / Feeling I Get
LA출신 3인조 그룹 By all means의 3집으로, 90년대 초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클래시컬한 소울 사운드를 제대로 재현하고 있다. 당시 가장 저평가된 그룹 중 하나로
지금도 국내 R&B 골수 매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반.
폭발적인 감성이 담긴 멜로디와 보컬, 수준급 세션으로 빚어진 사운드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최고의 앨범. Written by nonie (Jamm.co.kr)
아티스트: Stevie Wonder
앨범명: Motown Legends: I Was Made to Love Her
BGM: I Was Made to Love Her
아티스트: The Spinners
앨범명: The Very Best of the Spinners
BGM: Could It Be I'm Falling in Love
브라운아이드소울 -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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