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가 나왔다니, 드디어 가요계도 다양성을 존중하려는구나..란 일말의 희망이
느껴졌거든요. 함께 나오는 '얼스'라는 밴드도 Funky한 음악을 구사하는 팀이라기에,
두 팀 다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연 포스터를 보고 갈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죠.
근데 얼마전 제 블로그에 들르셨던 Eriel님의 블로그에서 또다시 이 공연 소식을 발견한
24일(공연 당일이죠), 망설였던 제 마음은 이미 홍대로 향해 있었습니다.
사실, 공연행을 결정하게 된 데는 약간의 '자기반성'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한국의
R&B 저변을 넓혀보겠다는 알량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10년이 넘게 들어
왔던 건 영미권 음악이었으니까요. 더이상 폄하할 수만은 없는 국내 시장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하고 싶은 각오도 있었습니다. 하여 최근 저의 공연 러쉬에
이들의 공연 또한 포함시키기로 작정, 정겨운 홍대 사운드홀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귀에는 커먼 그라운드의 2집이 흐르고 있었지요.
도착해 서둘러 표를 샀는데, 저 혼자 뿐이더군요. 괜히 서둘렀다 싶었습니다.
공연 시작까지 1시간, KFC에 앉아서 앨범을 간단히 리뷰해보기로 했습니다.
한마디로 'Funk라는 한 가지 장르를 다양하게 요리해 본 앨범'이더군요. 80년대
그룹사운드 삘부터 어반,디스코, 뽕발라드까지 없는게 없더군요. 그러나 전체적으론 조금
실망이었습니다. 본토 사운드에 가사만 우리말로 바꾼 듯한 개성없는 몇몇 곡들에서
그들만의 정서나 오리지널리티는 전혀 느낄 수 없었어요.
그래도 '너에게 걸린 마법', 'Night Dance'에서 보여준 산뜻한 사운드는 대중적인
코드에도 잘 맞는 깔끔한 곡들이었어요. 빵빵한 브라스 라인에 한 가닥 기대를 걸며,
다시 사운드 홀릭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도 이 곳에서 광란의 밤(?)을 보냈기에, 이제는 정겹기만 한
사운드 홀릭, 오늘도 인파에 떠밀리며 고생좀 하겠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공연 시작
5분 전에도 그 좁은 홀이 절반도 안 차더군요. 델리 스파이스 같은 록 밴드가 공연할 땐
예매자들이 줄을 설 정도인데, 너무 대조되더라구요. 다시 한번 한국의 흑인음악과
언더 공연에 대한 저변이 얼마나 좁은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1부는 얼스의 공연.
이제 1집을 낸 신참 밴드지만, 쏙쏙 박히는 산뜻한 훵키 사운드에 보컬의 입담도
대단했습니다. (사실 썰렁+자뻑+귀여움 약간^^;) 김건모를 연상케 하는 째지는 듯한
음색은 독특했습니다. 메이저에서도 손색없는 실력이었어요. 무대 매너 역시 신나고
재밌었습니다. 전혀 기대없이 맞닥뜨려서인지, 너무나 큰 만족감을 선사했습니다.
"Up & Down", "Never get it", "내맘은 언제나", "아직도","그때처럼" 등 1집 대부분을
라이브로 선사한 얼스의 공연은, 한번만 들어도 강렬한 훅이 귀에 꽃히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인지, 제 뒤에는 그들의 광팬으로 추정되는 여인네들이
전곡을 다 따라부르며 열렬히 추임새를 넣더군요.^^ 저도 금방 중독되어 버렸답니다.
2부, 드디어 기다리던 커먼 그라운드.(이미 얼스 떄문에 에너지는 상당 소진;;;)
그런데 등장부터 좀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13명이 무대에 오르니 서있는 것 조차
버거워 보이더군요. 우선 보컬 2명+랩퍼 1명. 역량있는 보컬 한 사람이면 충분할
무대에, 3명이나 정신없이 움직이니 집중이 하나도 안됩니다. 홍대 클럽 무대 장치야
별로 좋진 않겠지만, 보컬 목소리가 하나도 안들렸습니다. 분명 마이크 세팅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바로 직전 공연헀던 얼스에 비하면 해도 너무하는 수준. 되지도 않는
기교에,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고...세션들 연주하는데 색소폰 입구에 마이크 갖다대고
생쇼를 하더군요. (노래나 잘 부르지)
2집까지 냈으면서, 레파토리 중 여러 곡을 스티비 원더 등 기성곡으로 때운 것도 맘에
안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앵콜 외치는데, 아랑곳않고 차가운 표정으로 클럽 출구까지
나갔다가, 못이기는 척 다시 와서 자기네들이 만들었다는 "월드컵송"인지 뭔지
부르고 갔습니다. 시기를 노린 꼼수가 뻔히 보이는...씁쓸한 마무리곡이었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요약하자면, "얼스 만세!"입니다.ㅎㅎ
그리고 여러분, 공연 갑시다! 13명의 밴드도 본전 생각나지 않고 공연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줘야, 더 좋은 공연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럼 오늘의 리뷰,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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